아이들의 감정은 '놀이'로 말합니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단어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두렵고 속상한 감정도, 기쁘고 들뜬 기분도 몸짓과 표정, 그리고 놀이를 통해 드러내곤 합니다. 그래서 심리치료사의 하루는 '아이의 놀이를 생각해보는 일'로 시작됩니다. 이 글은 실제 놀이 심리치료사의 하루를 따라가며, 아이들의 감정 세계가 어떻게 드러나고 의미를 갖게 되는지 소개합니다.
오전 9시: 놀이 환경 준비 — 아이들의 마음이 열리는 공간
하루의 시작은 치료실을 정돈하고 놀이 환경을 준비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치료사는 아이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정리하거나 점검합니다. 블록, 인형, 그림도구, 모래상자, 역할놀이 소품까지 아이들의 선택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지요. 놀이 선택은 아이들의 심리상태와 관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 되기 때문에 치료사는 그날 사용할 도구를 세심히 준비하고 잘 비치해 둡니다.
오전 10시: 사례 ① 분노를 인형놀이로 표현한 아이
7세 남자아이 A군은 치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인형을 손에 쥐고 반복적으로 바닥에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인형을 떨어뜨리고 주워서 또 다시 넘어뜨리는 이 행동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아이 내면의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치료사는 아이의 놀이 흐름을 존중하며 관찰을 이어갑니다. 시간이 흐르자 아이는 인형을 "나쁜 놈"이라 부르며 공격적인 대사를 덧붙입니다. 이는 그동안 겪은 부정적 경험이나 억눌린 감정을 놀이로 풀어내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놀이가 끝난 뒤, 치료사는 아이가 경험한 상황을 조심스레 언어로 확인하고, 감정 이름을 붙여줍니다. 이는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건강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첫걸음입니다.
낮 12시: 일지 기록과 놀이 흐름 분석
오전 세션이 끝난 후, 치료사는 반드시 놀이 흐름과 관찰한 행동을 기록하며 의미있게 반응하였던 것, 부모에 대한 피드백과 반응 그리고 가정에서와 일상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의미있는 일들 중 보고 된 것을 기록합니다. 이 기록은 아이의 감정 상태, 표현 방식, 놀이 주제의 변화를 추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분노를 드러낸 A군이 이전 주차에도 유사한 인형 폭력 놀이를 반복했다면, 최근 어떤 생활 변화나 스트레스 요인이 있었는지 가족 상담에서 추가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후 2시: 사례 ② 불안을 숨바꼭질 놀이로 표현한 아이
5세 여아 B양은 치료 내내 숨는 놀이를 반복했습니다. 작은 인형을 모래상자에 묻고, 자신의 몸도 커튼 뒤에 숨기려 애쓰는 모습이 자주 보였습니다. 이는 주로 불안감, 두려움, 스트레스 환경에서 나타나는 방어적 놀이입니다.
치료사는 숨바꼭질 놀이에 함께 참여하면서, 아이가 "숨는 이유"를 직접 말하지 않아도 감정의 뿌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이후 부모 상담을 통해 환경적 스트레스를 조정하는 것이 치료의 중요한 방향이 됩니다.
오후 4시: 사례 분석 및 치료계획 준비
매 세션 후 치료사는 놀이 흐름을 종합 분석하여 다음 주 치료계획을 세웁니다. 반복되는 놀이 패턴은 어떤 감정 문제의 해결 과정일 수도 있고, 변화가 적은 경우 아이가 여전히 특정 감정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이때, 과거 일지를 함께 검토하며 놀이 주제의 변화를 체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인형을 때리는 놀이"가 "인형을 돌보는 놀이"로 변화했다면, 아이의 내면에 긍정적인 감정 전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후 6시: 부모 상담 - 가정과 치료의 연결고리
놀이 심리치료의 핵심은 아이만이 아니라, 부모와의 협력에서도 그 중요한 의미가 반영됩니다. 치료사는 부모에게 아이의 감정 상태와 놀이 패턴을 설명하며, 가정에서도 아이의 정서적 신호를 놓치지 않도록 조언합니다.
아이들은 치료실에서 표현한 감정을 가정에서도 비슷하게 행동으로 드러낼 때가 많으므로, 부모가 이러한 신호를 알아차리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론: 아이의 감정 세계를 읽는 하루
놀이 심리치료사의 하루는 아이들의 숨겨진 감정 언어를 해독하는 시간입니다. 단순한 놀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아이들의 두려움, 분노, 기쁨, 기대, 슬픔이 담겨있습니다. 치료사는 이 감정의 흐름을 존중하며 아이가 자신을 안전하게 표현하고 건강한 정서 발달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놀이를 통해 감정을 알아차리고, 치유하고, 성장하는 여정은 아이와 심리치료사가 함께 만들어가는 깊은 관계의 결과입니다.
참고 문헌
- Landreth, G. L. (2012). Play Therapy: The Art of the Relationship. Routledge.
- Axline, V. M. (1947). Play Therapy. Houghton Mifflin.
- Schaefer, C. E., & Drewes, A. A. (2014). The Therapeutic Powers of Play: 20 Core Agents of Change. Wiley.
'발달과 놀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리치료사의 관점에서 본 ‘아이의 상상 친구’ — 보이지 않는 친구가 알려주는 정서적 단서 (0) | 2025.04.25 |
---|---|
부모-아이 공동 심리치료 놀이: 유대감을 키우는 놀이형 치료법 (0) | 2025.04.24 |
아이의 발달을 돕는 ‘놀이 관찰 일지’ 작성법: 부모를 위한 실전 가이드 (0) | 2025.04.23 |
🚀 AI가 분석하는 우리 아이 놀이 패턴: 행동 데이터로 발달 체크하는 시대 (0) | 2025.04.21 |
영유아 발달의 초기 징후 ②: 주의력 결핍이 사회성과 정서에 미치는 영향 (0) | 2025.04.18 |
실수가 잦은 아이, 놀이로 키우는 문제해결력 — 실패를 성장으로 바꾸는 발달 놀이법 (0) | 2025.04.17 |
놀이가 권력 관계가 될 때 – 또래놀이 속 ‘은근한 폭력’의 심리학 (0) | 2025.04.16 |
놀이의 부재가 만든 ‘작은 어른들’ (0) | 2025.04.15 |